이 대 호
키 : 192cm
몸무게 : 100kg
알렉스 로드리게스
키 : 192cm
몸무게 : 102kg
0. 최고유명한 출석체크. 20초작전타임.
"저...정슥이, 네..네이트. 혀...혁이. 자..장후이, 오..."
삐이-
"나가-_-"
1. 그전작전타임 때 출석불러주시곤 그다음 작전타임때,
"너넨 왜 작전을 못따라!!"
물먹다 풋 하고 비웃은 서장훈-_-;;
2. 규섭아 지금 너가 돌아나가서 슛을 던져야될꺼아냐!!!!
규섭-"저지금 안뛰는데요?".
안감독- 지금부터뛰어-_-
3. 2쿼터에-_-.. "네이트! 오! 더블포스트-_-"
서-"지금 2쿼턴데요-_- 용병 한명."
안감독- 그럼누가뛰냐?
4. 유명한 스케일 일화
안감독- #!@!&^*(%&(*&)(^&*( understand?
스케일- 왓?????
5. 연장전. 12초남기고 1점차 작전타임.
안준호,
"이제 어쩌냐_-.... 어떻게 할까?"
그뒤 서장훈이 작전 지시.
6. 안준호-너가 스크린을 스고 너가 돌아가.
서장훈- 그렇게 하면 얘가 더블팁에 걸리잖아요. 얘가 돌아가는게 낫죠.
안준호- 그레 그렇게 해-_-,
7. "장훈아 니가 3점 안쏘면 누가쏴!"
8. 안준호- "야 서장훈 니가 파울로 끊었어야지!"
서장훈- "내가 끊었다가 4반칙 됬잖아요-_-"
안준호- "그러냐? 그럼...누구뛰지?"
9. 안준호- "야 지금 현주엽한테 계속 뚫리잖아!!!"
서장훈-"지금 주엽이 안뛰는데요-_-?"
10. 안준호- "야, 블록을 뜨란말야 블록을!! 골밑슛 몇개내줄레?"
이규섭- "지금 3점 계속 맞았는데요..."
11. 삼성 파울삑, 강혁 5반칙.
교체 선수를 내보내지 않자 심판의 휘슬.
이때 안준호의 명언
"누구 파울이였냐-_-?"
12. ‘파울 안돼, 파울하지마.’
상민-규섭 “돼!‘
코치 “파울 여유 남았는데요”
"...."
13. “이번엔 이 작전으로 가는거야. !#$@#$%$^@#!@#$!^@%!#$"
상민 “아, 여기서 이런 작전을 써야지” - 라며 껴든 후 선수들 다 이상민 얘기 듣고 있음.
“.....”
... 거의 리젠드인 박한 전 고대 감독에 근접하는 포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은 현재 25승 16패로 공동 2위를 질주중.
이상민 없이 시즌 중반을 잘 버티고 난 후 4라운드에만 11승 3패!
안준호 감독, 전술가로서의 능력은 없어보이지만.. 의외로 탁월한 전략가일지도?
P.S. 박한 전 감독의 포스를 잊으신 분을 위해
1. 농구대잔치 - 기아자동차와 경기. 20점 차, 마지막 작전타임
"야! 우리가 안되는게 딱 두가지 있어. 오펜스랑 디펜스야."
2. 한양대와 경기. 3점차, 종료 1초전. 전희철 3점 시도, 상대방 파울.
마지막 작전타임.
(전희철의 어깨를 짚으며)
"희철아"
"네?"
"세개 다 넣어라."
3. 연고전. 이상민을 막기 위해 박스원( 이상민만 대인방어, 나머지는 지역방어) 지시.
이상민이 우지원에게 연거푸 어시스트, 계속 3점 얻어맞고 작전타임.
(격앙된 어조로)
"야! 왜 자꾸 우지원이한테 3점을 내줘? 우지원 수비수 누구야?"
양희승 : "감독님이 박스원 하라고 했잖아요"
4. 경기전 감독이 작전 지시하는 시간.
(작전판에 동그라미를 그리며)
"이게 림이야"
(좀 작은 동그라미를 그리며)
"이게 볼이고."
(작은 동그라미에서 큰 동그라미로 화살표를 그리며)
"넣어!"
5. 좀 거슬러 올라가서.. 이충희가 맹활약하던 시절
전반 작전타임
"충희한테 패스해!"
하프타임
"충희한테 패스하라니까!"
후반 작전타임
"...충희야, 어떻게 하면 좋겠냐?"
우리나라의 현대사는 대충 다음의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 국가 형성기(1948~1961)
2. 산업화 시기(1961~1992)
3. 민주화 시기(1992~2007)
1987년에서 1992년까지의 시기를 민주화 시기에 포함시켜야 하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을 수 있다. 여하튼, 1과 2의 시기는 보수주의자들이 국가를 주도했다. 그들은 능률과 성과를 최우선시하는 다소 전체주의적이고 획일적인 방식을 택했고 그 결과 괄목할 만한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면을 살펴보면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유보, 혹은 제한되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3의 시기에 이르러 그동안 억눌려왔던 개인의 자유와 권리 회복이 국민적 요구에 의해 이루어지게 된다.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개인을 통제하고 억압했던 권위가 서서히 붕괴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말하는 '권위'란 작게는 가정의 가부장적 권위에서부터 나아가서는 국가 권력의 정치적 권위까지를 포함한다.) 권위의 붕괴에 이어 이제까지 존중받던 가치와 질서 또한 도전을 받고 결국 무너진다. 이에 따라 사회 전체가 윤리적 공동화 현상을 맞는다. 결국 새로이 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시대 정신의 출현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1992년 민주화 세력이 주역으로 등장하면서 민주, 평화, 통일, 개혁 등의 새로운 의제를 설정한다. 이후 사회 전부문의 개혁과 변화를 주도하지만 몰락한 기존의 가치와 질서를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정립하지는 못했다. (마치 모더니즘이 몰락하며 포스트모더니즘이 등장했지만, 그것이 모더니즘을 대신하는 시대적 정신으로 자리잡지는 못한 것처럼)
정권 교체 이후 10년, 이른바 민주화 세력은 무분별한 독선과 아집으로 권위주의 시대보다 오히려 더 엄혹한 도그마를 창출하고 이를 '개혁, 변혁'의 이름으로 사회 전반에 강요했다. 결국 그들은 국민의 냉소와 질타를 자초했으며 그동안 경멸의 대상이었던 보수 진영은 철저한 자각과 인식의 전환을 통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의제를 선점하기에 이른다.
보수주의자들은 우리 사회의 이행단계를 산업화 = 민주화 = 선진화 의 등식으로 구성하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통해 이룩해낸 성과를 정착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해 우리 사회의 '선진화'가 시급하다는 의제를 창출했고 이후 일정 부분 국민의 공감을 얻어 현재 새로운 시대 정신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선진화'가 향후 우리 사회의 새로운 지향점으로 확정될 수 있을지는 이번 대선으로 판가름날 것이다.
민주화 시기 이후 우리 사회는 저성장, 양극화 현상에 직면하게 된다. 이 두 가지는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접어드는 과도기의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떠안는 숙제다. 저성장과 양극화 현상을 나타내는 지표로 경제성장률과 지니계수를 살펴봤다.
※ 연도별 경제성장률 추이
연도 1999 2000 2001 2002 2003 2004 2005
경제성장률(%) 9.5 8.5 3.8 7.0 3.1 4.7 4.0
※ 연도별 지니계수(소득집중도)추이
연도 1992 1993 1994 1995 1996 1997 1998 1999
소득집중도 0.2836 0.2817 0.2845 0.2837 0.2907 0.2830 0.3157 0.3204
연도 2000 2001 2002 2003 2004
소득집중도 0.3170 0.3190 0.3120 0.3060 0.3100
(자료 출처 : 한국 통계청 홈페이지)
경제성장률은 2000년 이후 정체중이고, 지니계수는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지니계수는 소득집중도를 숫자로 나타낸 것으로, 0이면 완전 균등 분배 상태이고 1이면 완전 불균등 분배 상태이다. 즉, 1에 가까울수록 소득의 분배가 불균등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1999년을 기점으로 .30~.32 사이의 수치를 기록하는데, 미국의 경우 같은 기간 .35 정도를 나타내고 있다. 그럼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소득이 균등하게 분배되는가? 라고 하면, 그렇지는 않다. 위의 자료는 임금 소득 분배만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에 따르면 1995년 당시 우리나라의 금융자산 지니계수는 0.656, 부동산 중 건물(주택 등)의 지니계수는 0.664, 토지는 0.900으로 극심한 불평등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저성장, 양극화 현상이 심화됨에 따라 각 이익집단과 계층 사이의 갈등이 가중된다. 이러한 현실은 보수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선진화', 즉 고도성장, 경쟁력 제고, 국력신장을 통해서는 극복하기 어렵다. '규모의 경제'를 모토로 하는 고도성장 정책은 저성장 현상의 대안은 될 수 있을지언정 양극화 현상은 해결할 수 없다. 결국 '파이'를 키우는 것에는 성공하더라도 배고픈 사람은 배고픈 채로, 배부른 사람은 배부른 대로 사회가 정체될 것이다.
보수주의자들이 주장하는 '파이를 키워 모든 사람을 만족시킨다'는 논리는 결국 물량 공급주의이다. 그러나 이 논리가 설득력을 얻는 것은 개발독제 시대에 국한된다. 국민의 대다수가 먹고 살 걱정에 여념이 없는 시대 말이다. 그리고 이 땅에서 그 시대는 이미 지난지 오래다. 사람들은 이제 단순히 먹고 사는 삶 이상의 것을 원한다. 그리고 그것은 물량 공급주의로는 충족시킬 수 없는 욕구이다.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양극화 현상으로 심화된 집단 및 계층간의 갈등을 허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화해와 용서', '관용과 공존'을 보장하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 지역, 계층,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의 리더십만이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결론 : ... 결국 이번 대선에도 찍을 놈은 없다.
군시절 선후임들과 함께 10km부문에 참가했다. 참가비는 2만원, 기념품은 가방 하나. 6시에 일어나 감기는 눈을 비비며 집을 나설 때만 해도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고 생각했는데 뛰고 나니까 성취감이 조금 든다. 근데 다리는 좀 아프다... 생각해 보면 5km 이상 뛰어본 경험이 없다. 미리 연습좀 해볼걸.
식전 행사에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마라톤에서 1위로 달리던 중 한 광신도가 갑자기 나타나 인도까지 끌고 가서 넘어뜨리는 바람에 금메달을 놓쳤던(이렇게 억울한 경우가 또 있을까? -_-;) 리마가 골인 세레머니를 했다. 원빈과 앙 선생도 잠깐 스테이지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던데 정확히 뭘 했는지는 기억 안나고 ㅡ,.ㅡ 행사가 조금 길어져서 예정시간보다 좀 늦게 출발했다.
나이는 못속이는 건지, 아니면 다 잘뛰는 인간들만 모여서 그런지 7명중 내가 꼴찌였다. 기록측정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칩을 신발에 매고 달려서, 칩을 반환한 다음 문자로 보내주더라.. 내 기록은 54분 9초. 1위 기록은 37분 가량. 뛸 때 보니까 무슨 단거리 경주 하는 마냥 뛰는데, 내가 4km지점 도착하기도 전에 반환점을 돌아오고 있었다 -_-;;;
사진 몇 장.
“성품은 말보다 더 크게 말한다.”
이 책의 원 제목은 ‘Louder than words'이다. 아마도 저자가 차용했을 가능성이 농후한, 흔히 쓰는 본래의 표현은 ’Action speaks louder than words'인데, 이는 ‘말보다 행동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며 실행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저자는 왜 본래의 표현에서 ‘Action speak'를 지웠을까? 이 책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백 마디 말보다 우리를 잘 나타내는 지표가 있으며 그것은 Action이 아닌 다른 것이다.
이제 번역된 제목을 보자. ‘성품은 말보다 더 크게 말한다.’ 언뜻 보기에 문제가 없어 보인다. 성품은 사람의 성질, 됨됨이를 뜻하며 아무리 번지르한 말로 꾸미려 해도 조만간 실체를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데 믿을 만한 지표로서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역자가 단어를 잘못 선택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 그 이유는 본문 중 ‘성품’이 ‘있다’, 혹은 ‘없다’는 표현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이미 적은 바와 같이 성품은 사람의 됨됨이를 나타내는 명사이며 따라서 ‘있거나 없는’ 것이 아니라 ‘좋거나 나쁜’ 것이 되어야 한다. 성격이 좋거나 나쁠 수는 있지만 성격이 없을 수는 없다. 오히려 출판물에는 쓰기 민망한, 그러나 일상에서 훨씬 자주 쓰이는 ‘싸가지’나 ‘개념’과 같은 단어들이 의미를 전달하기에는 더 적합해 보인다.(물론 이 단어들을 출판물에 쓸 수는 없는 일이기에, 이 글에서도 ‘성품’이라는 단어를 쓰기로 하겠다.)
본문에서 저자는 성품의 정의는 1. 하나님의(우리에 대한) 주권과 2. 소유권에서 도출할 수 있으며, 그 내용은 ‘어떤 대가가 따르더라도 하나님 기준의 옳은 길을 가려는 의지’라고 밝히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성품은 모든 관계, 즉 하나님과의 관계, 자신과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 공동체 내에서의 관계의 근간이 되며 그것을 원활하게 하는 윤활유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좋은 성품을 가지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저자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 우리 안의 성령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것, 좋은 성품에 해가 되는 마음을 경계할 것, 하루아침에 변화를 기대하고 그렇지 않을 때 실망하지 말 것. 그러나 이것으로 끝은 아니다. 우리는 옛 모습을 버리고 새것을 입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 우리의 이기심과 싸우고, 강퍅해지려는 마음과 싸우고, 익숙하지 못한 진리에 의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직도 우리를 괴롭히는 과거의 죄악들도 해결해야 하고, 반대로 과거에 우리에게 빚을 진 채무자들도 용서해야 한다.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며, 이 모든 것들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결국 우리의 할 일은 하나로 귀결된다. 우리 안의 성령님께 의지하는 것이다. 항상 의뢰하고 간구하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며, 해야 할 일이다. 믿는 자로서 바람직한 성품을 갖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미덕을 행하는 것은 사람의 의지와 능력으로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오직 내 안의 성령님만이 그 난해한 미로 안에서 길을 잃지 않고 나를 인도할 수 있다.
이처럼 이 책은 바람직한 성품을 기르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수많은 조건들과 그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지도를 숙지하는 것은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한 필요조건 중 하나에 불과하다. 지도를 본 후에는 그 정보를 활용하여 목적지까지 걷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즉, 이 책을 읽고 내용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틀림없이 지키는 것이 관건이다. 저자가 이 점까지 고려해서 제목을 정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본래의 표현에서 삭제된 부분을 되살려야 할 시간인 듯하다. “Action speaks louder than words."